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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연 '미선' 님의 <이것이 아나뱁티스트다> 후기 서평입니다.
(출처 : http://www.freeview.org/bbs/​board.php?bo_table=f003&wr_id=4​06 )


누누이 말하지만, 세기연이 기독교 전통 자체를 아예 부정하는 단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임을 말씀드린다. 예컨대, 성육신 교리나 성화의 개념 등등 몇몇 중에서 유익한 요소들은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삼위일체라는 교리도 예수라는 존재를 보다 새롭게 해석해냄으로써 이전과 다른 새로운 차원의 삼위일체론을 추구할 따름이다. 적어도 기독교 전통 자체를 부정하기 위한 그런 목적을 지니고 있진 않다는 것이다. 다만 늘상 밝히는 얘기지만, 그 어떤 막강 파워의 기독교 전통이라도 오류와 비극에 선행할 수 없다고 보는 입장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큰 새로운 전환으로 기초 관점으로서의 패러다임 변혁이 있어야만 하며 그 새로운 패러다임 기반 하에서 기존 기독교의 모든 테제들을 처음부터 다시금 검토하면서 재수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보다 유용한 것들이 있다면 여전히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재수정 또는 필요하다면 폐기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뿐이다.

지금 소개하는 책은 기독교 전통의 주류는 아니더라도 기독교 역사에서 엄연히 한 분파를 차지하며 이어져 왔던 <아나뱁티스트>(재세례파)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것이다. 재세례파란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나중에 다시 세례(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뜻에서 나온 것인데, 원래 이 명칭은 재세례파를 반대하는 반대 진영으로부터 이들을 지칭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따라서 아나뱁티스트라는 재세례파 명칭에는 약간의 비하적인 의미도 없잖아 있는 걸로 안다. 어쨌든 이들 아나뱁티스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기독교 신앙은 결국 역사적 예수의 삶을 닮고자 하는 그러한 신앙관을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이곳 세기연이 추구하는 신앙관과도 부합된다.

이 책에서 콘스탄틴누스 황제 이후의 주류 기독교 시스템 전체를 <크리스텐덤>Christendom(기독교왕국)으로 부르고 있다. 이는 새로운 기독교를 추구하는 세기연이 이전의 낡은 <기존 기독교>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의 이해다. 그리고 현재의 기독교 시대를 <포스트 크리스텐덤>이라고 부른다. 기존의 크리스텐덤을 넘어서고자 하는(혹은 넘어서야만 하는), 그런 점에서 기독교의 새로운 변혁이 도래했다고 보는 <후기-기독교왕국>의 시대라는 것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실천적 기독 신앙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급진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마치 예수운동 시대에 자신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예수를 극단적으로 따르며 추종했던 무전걸식의 방랑의 래디칼리즘을 떠올리게 해준다. 그래서 이들의 제자도는 <급진적 제자도>로 표현된다. 이들 아나뱁티스트들이 추구하는 신앙의 핵심 가치와 신념은 7가지로 나오며 예수중심적 접근을 지향한다(70-71쪽).

이들의 교회론도 서로 함께 나누는 공산사회적인 공동체주의에 가깝다. 이들 나름대로는 거의 원형의 예수운동에 접근하고자 하는 맥락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이 책에서 주장하는 상당 부분이 이곳 세기연이 주장하는 것들과 서로 겹쳐질만큼 비슷한 내용들이 눈에 많이 뜨일 것으로 본다.

나는 기독교 전통 안에 비록 주류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분파가 있어왔음을 정말로 반갑게 여긴다. 물론 그렇다해도 거의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메노나이트도 이들과 관련된 분파라고 한다.

하지만 약간의 한계도 보인다. 우선은 실천적인 지향들은 상당히 급진적이긴 하나 신학적 기조는 여전히 추상적인 점이 없잖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예수중심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어떤 역사적 예수의 유형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성서관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존 기독교가 지닌 문자적 성서 이해나 초자연주의에 대한 입장, 그리고 설득력 있는 신관 추구 등등 이러한 기조들에 대해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스탠스를 취하진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것이 모호할 경우 아나뱁티스들 안에서도 보수 기독교로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실제로 메노나이트들 중에는 여전히 '목적이 이끄는 삶'(교회)류의 기독 신앙에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고 말한다.

물론 성서관, 신관, 역사적 예수, 기독론, 창조냐 진화냐 등등 구체적으로 이러한 것들을 몰라도 신앙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에서는 보다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입장들의 표명과 소통을 원하고 있는 측면 역시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실천지상주의의 측면으로만 본다면 아나뱁티스들의 신앙관은 매우 급진적이며 매력적이다. 따라서 우리가 따를 수 있는 정말 소박한 기독교 신앙의 가장 참되고 바람직한 신앙 모델이 있다면 나 역시 이 책에서 주장하는 <아나뱁티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의 뇌와 가슴이 동시에 필요하다. 아나뱁티스트들 신앙 추구는 예수의 심장에는 매우 충실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원형의 예수운동을 추구한다면 결국은 예수가 지녔던 예수의 성서관, 예수의 신관, 예수의 세계 이해 등등 이 역시 함께 규명되어야 함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더이상 보수 기독교로 빠지지 않고 보다 튼튼한 이론적 뒷받침에 의해 지속가능한 급진적 실천이 계속 재생산되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북미권의 기독교 진영은 성서관, 진화론, 동성애, 낙태 문제 등등 여러 다양한 신학적 이론적 입장의 노선들 때문에 서로 간에 분분한 논란이 되고 있다. 오늘날은 다양한 삶의 상황 가운데 놓여 있기에 세부적인 지점에까지 모호하지 않은 입장의 표명들을 요구받는 것이다. 그럴 경우 21세기 현대를 사는 아나뱁티스들 역시 바로 이 지점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과는 또 다르지만 기독교의 여러 분파들 중 <유니테리언>의 경우는 그 자신들의 입장과 신학적 노선을 보다 분명히 밝힘으로서 좀 더 선명한 색조를 취하는데, 내가 보기엔 아나뱁티스트 역시 자신들의 신학적 노선과 입장들을 좀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유니테리언도 아나뱁티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소수의 기독교 분파에 속하는데 이들의 경우는 상당히 자유롭고 지적인 진보적 신학 노선의 그리스도교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이 책 <이것이 아나뱁티스트다>를 추천하는 것은, 그래도 기독교의 전통 유산들 가운데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반갑게도 많은 기독교 개혁주의자들을 언급하면서 하워드 요더를 비롯해 월터 윙크나 마커스 보그까지도 함께 할 수 있는 인물로 거론하기도 한다(85쪽). 즉, 내가 보기에도 여전히 새로운 기독교로서 변혁될 여지 역시 많이 내포되어 있는 점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은 것이다.

아마도 오늘날 중간 복음주의 진영과 기존 진보 기독교 진영 모두가 무리 없이 합의할 수 있고, 따를 수 있는 초안으로서의 기독교 신앙 모델을 들라고 한다면 이들 아나뱁티스들이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을 떠올려봐도 좋을 것이다. 물론 새로운 기독교를 표방하는 이곳 세기연 역시 무리 없이 합의할 수 있는 대목에 해당된다.

그러나 서로 간에 논쟁적이고 분쟁적인 요소들은 보다 구체화된 신학적 맥락으로 파고들어가면서 일어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나뱁티스트들 역시 좀 더 선명한 기독교 신앙의 체계 수립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쉽게 표현하자면, 가장 이상적인 미래의 기독교를 그려보고자 할 경우, 이곳 세기연이 표방하는 이론적 입장과 아나뱁티즘이 표방하는 실천적 입장이 함께 결합된 모델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냥 쉽게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보다 구체적인 이론적 선명성을 취해야만 하는 이유는 이들의 급진적 실천성을 지속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물론 그 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쨌든 아직까지도 이 책을 읽지 않으신 기독교인들이라면 꼭 한 번 사보시길 권하는 바이다. 예전에 대장간의 책들 중에 <교회가 없다>라는 좋은 책을 발간해서 아래 세기연 책 게시판에도 추천한 적 있었는데(관련 링크 http://freeview.org/bbs/​tb.php/f003/24 참조. 현재 이 책은 <이교에 물든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와 있다), <이것이 아나뱁티스트다>라는 이 책 역시 바로 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기도 하다. 일독을 권한다. 후기 서평


누누이 말하지만, 세기연이 기독교 전통 자체를 아예 부정하는 단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임을 말씀드린다. 예컨대, 성육신 교리나 성화의 개념 등등 몇몇 중에서 유익한 요소들은 이를 받아들이고 있다. 삼위일체라는 교리도 예수라는 존재를 보다 새롭게 해석해냄으로써 이전과 다른 새로운 차원의 삼위일체론을 추구할 따름이다. 적어도 기독교 전통 자체를 부정하기 위한 그런 목적을 지니고 있진 않다는 것이다. 다만 늘상 밝히는 얘기지만, 그 어떤 막강 파워의 기독교 전통이라도 오류와 비극에 선행할 수 없다고 보는 입장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가장 큰 새로운 전환으로 기초 관점으로서의 패러다임 변혁이 있어야만 하며 그 새로운 패러다임 기반 하에서 기존 기독교의 모든 테제들을 처음부터 다시금 검토하면서 재수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보다 유용한 것들이 있다면 여전히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재수정 또는 필요하다면 폐기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보는 것뿐이다.

지금 소개하는 책은 기독교 전통의 주류는 아니더라도 기독교 역사에서 엄연히 한 분파를 차지하며 이어져 왔던 <아나뱁티스트>(재세례파)의 기독교 신앙에 대한 것이다. 재세례파란 유아세례를 반대하고 나중에 다시 세례(침례)를 받아야 한다는 뜻에서 나온 것인데, 원래 이 명칭은 재세례파를 반대하는 반대 진영으로부터 이들을 지칭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따라서 아나뱁티스트라는 재세례파 명칭에는 약간의 비하적인 의미도 없잖아 있는 걸로 안다. 어쨌든 이들 아나뱁티스들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기독교 신앙은 결국 역사적 예수의 삶을 닮고자 하는 그러한 신앙관을 지니고 있다. 그런 점에서는 이곳 세기연이 추구하는 신앙관과도 부합된다.

이 책에서 콘스탄틴누스 황제 이후의 주류 기독교 시스템 전체를 <크리스텐덤>Christendom(기독교왕국)으로 부르고 있다. 이는 새로운 기독교를 추구하는 세기연이 이전의 낡은 <기존 기독교>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맥락의 이해다. 그리고 현재의 기독교 시대를 <포스트 크리스텐덤>이라고 부른다. 기존의 크리스텐덤을 넘어서고자 하는(혹은 넘어서야만 하는), 그런 점에서 기독교의 새로운 변혁이 도래했다고 보는 <후기-기독교왕국>의 시대라는 것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실천적 기독 신앙은 그런 점에서 상당히 급진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마치 예수운동 시대에 자신의 안락한 삶을 버리고 예수를 극단적으로 따르며 추종했던 무전걸식의 방랑의 래디칼리즘을 떠올리게 해준다. 그래서 이들의 제자도는 <급진적 제자도>로 표현된다. 이들 아나뱁티스트들이 추구하는 신앙의 핵심 가치와 신념은 7가지로 나오며 예수중심적 접근을 지향한다(70-71쪽).

이들의 교회론도 서로 함께 나누는 공산사회적인 공동체주의에 가깝다. 이들 나름대로는 거의 원형의 예수운동에 접근하고자 하는 맥락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이 책에서 주장하는 상당 부분이 이곳 세기연이 주장하는 것들과 서로 겹쳐질만큼 비슷한 내용들이 눈에 많이 뜨일 것으로 본다.

나는 기독교 전통 안에 비록 주류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분파가 있어왔음을 정말로 반갑게 여긴다. 물론 그렇다해도 거의 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메노나이트도 이들과 관련된 분파라고 한다.

하지만 약간의 한계도 보인다. 우선은 실천적인 지향들은 상당히 급진적이긴 하나 신학적 기조는 여전히 추상적인 점이 없잖아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예수중심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그것이 어떤 역사적 예수의 유형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성서관에서도 마찬가지다. 기존 기독교가 지닌 문자적 성서 이해나 초자연주의에 대한 입장, 그리고 설득력 있는 신관 추구 등등 이러한 기조들에 대해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스탠스를 취하진 않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것이 모호할 경우 아나뱁티스들 안에서도 보수 기독교로 언제든지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는 것이다. 실제로 메노나이트들 중에는 여전히 '목적이 이끄는 삶'(교회)류의 기독 신앙에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한다고 말한다.

물론 성서관, 신관, 역사적 예수, 기독론, 창조냐 진화냐 등등 구체적으로 이러한 것들을 몰라도 신앙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에서는 보다 분명하고도 구체적인 입장들의 표명과 소통을 원하고 있는 측면 역시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실천지상주의의 측면으로만 본다면 아나뱁티스들의 신앙관은 매우 급진적이며 매력적이다. 따라서 우리가 따를 수 있는 정말 소박한 기독교 신앙의 가장 참되고 바람직한 신앙 모델이 있다면 나 역시 이 책에서 주장하는 <아나뱁티스트>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예수의 뇌와 가슴이 동시에 필요하다. 아나뱁티스트들 신앙 추구는 예수의 심장에는 매우 충실하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원형의 예수운동을 추구한다면 결국은 예수가 지녔던 예수의 성서관, 예수의 신관, 예수의 세계 이해 등등 이 역시 함께 규명되어야 함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더이상 보수 기독교로 빠지지 않고 보다 튼튼한 이론적 뒷받침에 의해 지속가능한 급진적 실천이 계속 재생산되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북미권의 기독교 진영은 성서관, 진화론, 동성애, 낙태 문제 등등 여러 다양한 신학적 이론적 입장의 노선들 때문에 서로 간에 분분한 논란이 되고 있다. 오늘날은 다양한 삶의 상황 가운데 놓여 있기에 세부적인 지점에까지 모호하지 않은 입장의 표명들을 요구받는 것이다. 그럴 경우 21세기 현대를 사는 아나뱁티스들 역시 바로 이 지점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들과는 또 다르지만 기독교의 여러 분파들 중 <유니테리언>의 경우는 그 자신들의 입장과 신학적 노선을 보다 분명히 밝힘으로서 좀 더 선명한 색조를 취하는데, 내가 보기엔 아나뱁티스트 역시 자신들의 신학적 노선과 입장들을 좀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유니테리언도 아나뱁티스트들과 마찬가지로 소수의 기독교 분파에 속하는데 이들의 경우는 상당히 자유롭고 지적인 진보적 신학 노선의 그리스도교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이 책 <이것이 아나뱁티스트다>를 추천하는 것은, 그래도 기독교의 전통 유산들 가운데에서도 일말의 희망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반갑게도 많은 기독교 개혁주의자들을 언급하면서 하워드 요더를 비롯해 월터 윙크나 마커스 보그까지도 함께 할 수 있는 인물로 거론하기도 한다(85쪽). 즉, 내가 보기에도 여전히 새로운 기독교로서 변혁될 여지 역시 많이 내포되어 있는 점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책을 꼭 추천하고 싶은 것이다.

아마도 오늘날 중간 복음주의 진영과 기존 진보 기독교 진영 모두가 무리 없이 합의할 수 있고, 따를 수 있는 초안으로서의 기독교 신앙 모델을 들라고 한다면 이들 아나뱁티스들이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을 떠올려봐도 좋을 것이다. 물론 새로운 기독교를 표방하는 이곳 세기연 역시 무리 없이 합의할 수 있는 대목에 해당된다.

그러나 서로 간에 논쟁적이고 분쟁적인 요소들은 보다 구체화된 신학적 맥락으로 파고들어가면서 일어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나뱁티스트들 역시 좀 더 선명한 기독교 신앙의 체계 수립이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쉽게 표현하자면, 가장 이상적인 미래의 기독교를 그려보고자 할 경우, 이곳 세기연이 표방하는 이론적 입장과 아나뱁티즘이 표방하는 실천적 입장이 함께 결합된 모델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냥 쉽게 말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보다 구체적인 이론적 선명성을 취해야만 하는 이유는 이들의 급진적 실천성을 지속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물론 그 역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쨌든 아직까지도 이 책을 읽지 않으신 기독교인들이라면 꼭 한 번 사보시길 권하는 바이다. 예전에 대장간의 책들 중에 <교회가 없다>라는 좋은 책을 발간해서 아래 세기연 책 게시판에도 추천한 적 있었는데(관련 링크 http://freeview.org/bbs/​tb.php/f003/24 참조. 현재 이 책은 <이교에 물든 기독교>라는 제목으로 개정판이 나와 있다), <이것이 아나뱁티스트다>라는 이 책 역시 바로 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기도 하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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