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타사르 후브마이어의 역동적이고 관계론적 관점에서의 구원론
Balthasar Hubmaier’s Doctrine of Salvation in Dynamic and Relational Perspective
들어가는 말
16세기 종교개혁을 살펴보면 기독교 내의 부패한 기존 세력을 붕괴시키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목표는 루터, 쯔빙글리, 그리고 칼빈과 같은 온건한 개혁자들과 유사했으나 그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성경에 근거하여 바꾸고자 했던 급진적 세력이 있었다. 그들 중의 하나가 아나밥티스트(Anabaptist, 재세(침)례파)이다. 아나밥티스트(Anabaptists: Re-baptizers)란 1525년 1월, 스위스 쮜리히에서 쯔빙글리와 함께 개혁운동을 펼치던 그룹 중에 진보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쯔빙글리의 교회 개혁 방법으론 온전한 교회 개혁을 이룰 수 없다는 판단하여 그들만의 모임을 갖게 되었다. 이들은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성인이 자신의 신앙을 스스로 고백할 때 세례를 주어야 한다는 ‘신자의 세례(believers’ baptism)’를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발타사르 후브마이어 (Balthasar Hubmaier) 또한 동시대의 아나밥티스트 중의 한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는데, 그는 16세기 초에 있었던 급진적 종교개혁자들 중 가장 창조적이고 뛰어난 저술가이자 개혁자로 인식된다. 그는 종교개혁 전에는 가톨릭의 사제로서 또한 신학자로서 유명했고 탁월한 설교자로서 인정받았으나, 종교개혁이 한창 진행되던 1521년 전후를 해서 그는 종교개혁 사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1523년에 스위스에서 쯔빙글리와 후에 아나밥티스트의 리더들이 될 콘라드 그레벨 (Conrad Grebel) 등의 개혁자들과의 만남은 그로 하여금 종교개혁자의 사상을 품고 사역할 수 있는 계기를 부여하게 되었다. 1525년 4월 아나밥티스트가 된 후브마이어는 1528년 3월 10일에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화형으로 순교하기 전까지 짧은 기간 동안의 사역을 통해 많은 지역에서 교회개혁을 추진했으며, 설교자로서 신학자로서 또한 많은 저술들을 남기게 되었다. 그는 비록 가톨릭과 주류 종교개혁자들에게 이단으로 낙인 찍혀 화형 되었지만, 그의 저술들은-우리에겐 친숙하지 않지만- 후대에도 영향을 끼쳐서, 17세기 가톨릭의 스페인 종교재판에서의 금서목록에도 들 정도였다. .....
****** 요렇게 시작하는 요약문입니다. 미리 읽어보시면 좋겠네요. 추가 자료 있으면 올려놓을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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