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저자 스튜어트 머레이(Stuart Murray)는 런던 아나뱁티스트 네트워트의 대표다. 그는 아나뱁티스트에 관해 장점과 약점을 가리지 않고 툭 터놓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책의 원서 제목이 아예 <발가벗겨진 아나뱁티스트(The Naked Anabaptist)>이며, 제1장의 제목조차 '툭 터놓고 말하기(Uncovering Anabaptists, 아나뱁티스트 벗기기)'다. 1장에서는 아나뱁티스트에 대해, 교회사에서 각주로 취급받은 존재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적합한 해답을 줄 수 있을지, 아나뱁티스트를 분리주의자로 인식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그들은 침례의 문제와 연결된 자들인지, 그들은 모두 평화주의자(pacifists)인지 묻고 답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아나뱁티스트(Anabaptist)들을 편협된 급진적 기독교 분파 정도로만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유아세례문제에 목숨을 걸었고, 이 일로 수많은 핍박을 받은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시대적 배경 아래서 이 문제를 이해하게 되었다. 16세기 유아세례를 부정하고 재침례를 받는 행위는 “크리스텐둠 체제의 핵심에 타격을 주고,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시민들이 속하게 되는 영역교회 체제를 뒤흔들면서 사회 분열을 조장”(p. 199)하는 것이었다. 아타뱁티스트에게 있어서 다시 세례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는 단순히 종교형식적인 문제가 아니라, 시대를 거슬리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포스트 크리스텐둠이 도래한 지금이야 말로, 신앙의 본질을 논의할 때가 아닌가!
제2장에는 아나뱁티스트의 일곱 가지 신념을 잘 정리해 놓고 있다. (1) 예수님은 우리 삶의 모범이요, 선생이요, 친구이자 구원자이며, 그리고 주님이시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중심적 계시이다. (3) 서양 문화는 서서히 크리스텐둠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크리스텐둠은 복음을 심각하게 변질시켰다. (4) 교회가 세상적 지위와 부, 권력과 습관적으로 결탁하는 것은, 예수를 따르는 자에게는 부적절할 뿐 아니라 증인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한다. (5) 교회란, 제자도, 선교, 친교, 상호책임성, 다양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예배를 위해 헌신된 공동체를 일컫는다. (6) 영성과 경제는 상호 연관되어 있다. 개인주의와 소비지향적 문화, 경제적 불평등이 만연한 세상이지만, 단순한 삶, 나누는 삶, 창조세계를 돌보고 정의로운 삶을 추구한다. (7) 평화는 복음의 핵심이다. 따라서 개인, 사회, 국가 간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비폭력적 대안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제3장(예수따름)은 1, 2신념을, 제4장(크리스텐둠 이후)은 3, 4신념을, 제5장(공동체와 제자도)은 5신념을, 제6장(정의와 평화)은 6, 7신념을 자세히 논의한다. 7장과 8장에서 초창기 아나뱁티스트의 역사부터 현재의 아나뱁티즘까지 자세히 서술하면서, 아나뱁티즘의 약점도 정직히 인정한다. 율법주의의 수렁에 빠지기 쉬움, 선택적으로 신약에 집중함, 지성주의/반지정주의, 분열과 분리주의의 위험, 침묵주의, 타성 등.
현재 한국의 사회적 상황은 개신교교회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다. 포스트 크리스텐둠의 시기로 들어간 것이다. 교회들은 이 사실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며 부흥을 꿈꾸고 몸부림친다. 하지만 앞으로 상황은 더 약화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아나뱁티스트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이것이 기회일 수 있다. 크리스텐둠 시기에 교회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을 대량 양산했다. 그것이 오히려 신앙의 순수함을 무너뜨리고, 교회를 약화시켰던 것이다. 그러니 지금 시기는 오히려 기독교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 진정한 예수 운동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절호의 순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나뱁티즘이 물질주의와 성공주의에 물든 한국 기독교회에 참된 신앙의 공동체로서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철저히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길 원하는 개신교 신자들에게 아나뱁티즘은 참된 공동체를 세우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뒤에 수록된 ‘소그룹 공부 가이드’에 나오는 질문들을 꼼꼼히 점검하고 답을 달아 보아야겠다. 상당히 도전적인 책이다. 참된 믿음과 제자도에 관심있는 자들, 한국개신교의 미래를 염려하는 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아나뱁티스트(Anabaptist)들을 편협된 급진적 기독교 분파 정도로만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유아세례문제에 목숨을 걸었고, 이 일로 수많은 핍박을 받은 역사적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시대적 배경 아래서 이 문제를 이해하게 되었다. 16세기 유아세례를 부정하고 재침례를 받는 행위는 “크리스텐둠 체제의 핵심에 타격을 주고,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시민들이 속하게 되는 영역교회 체제를 뒤흔들면서 사회 분열을 조장”(p. 199)하는 것이었다. 아타뱁티스트에게 있어서 다시 세례를 받느냐 받지 않느냐는 단순히 종교형식적인 문제가 아니라, 시대를 거슬리면서까지 지켜야 하는 신앙의 본질적인 문제였던 것이다. 그런데, 포스트 크리스텐둠이 도래한 지금이야 말로, 신앙의 본질을 논의할 때가 아닌가!
제2장에는 아나뱁티스트의 일곱 가지 신념을 잘 정리해 놓고 있다. (1) 예수님은 우리 삶의 모범이요, 선생이요, 친구이자 구원자이며, 그리고 주님이시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의 중심적 계시이다. (3) 서양 문화는 서서히 크리스텐둠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다. 크리스텐둠은 복음을 심각하게 변질시켰다. (4) 교회가 세상적 지위와 부, 권력과 습관적으로 결탁하는 것은, 예수를 따르는 자에게는 부적절할 뿐 아니라 증인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한다. (5) 교회란, 제자도, 선교, 친교, 상호책임성, 다양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예배를 위해 헌신된 공동체를 일컫는다. (6) 영성과 경제는 상호 연관되어 있다. 개인주의와 소비지향적 문화, 경제적 불평등이 만연한 세상이지만, 단순한 삶, 나누는 삶, 창조세계를 돌보고 정의로운 삶을 추구한다. (7) 평화는 복음의 핵심이다. 따라서 개인, 사회, 국가 간의 평화를 만들어가는 비폭력적 대안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제3장(예수따름)은 1, 2신념을, 제4장(크리스텐둠 이후)은 3, 4신념을, 제5장(공동체와 제자도)은 5신념을, 제6장(정의와 평화)은 6, 7신념을 자세히 논의한다. 7장과 8장에서 초창기 아나뱁티스트의 역사부터 현재의 아나뱁티즘까지 자세히 서술하면서, 아나뱁티즘의 약점도 정직히 인정한다. 율법주의의 수렁에 빠지기 쉬움, 선택적으로 신약에 집중함, 지성주의/반지정주의, 분열과 분리주의의 위험, 침묵주의, 타성 등.
현재 한국의 사회적 상황은 개신교교회의 영향력이 쇠퇴하고 있다. 포스트 크리스텐둠의 시기로 들어간 것이다. 교회들은 이 사실에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며 부흥을 꿈꾸고 몸부림친다. 하지만 앞으로 상황은 더 약화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아나뱁티스트의 입장에서 보면 오히려 이것이 기회일 수 있다. 크리스텐둠 시기에 교회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을 대량 양산했다. 그것이 오히려 신앙의 순수함을 무너뜨리고, 교회를 약화시켰던 것이다. 그러니 지금 시기는 오히려 기독교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 진정한 예수 운동이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절호의 순간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아나뱁티즘이 물질주의와 성공주의에 물든 한국 기독교회에 참된 신앙의 공동체로서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철저히 예수의 제자로 살아가길 원하는 개신교 신자들에게 아나뱁티즘은 참된 공동체를 세우는 올바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뒤에 수록된 ‘소그룹 공부 가이드’에 나오는 질문들을 꼼꼼히 점검하고 답을 달아 보아야겠다. 상당히 도전적인 책이다. 참된 믿음과 제자도에 관심있는 자들, 한국개신교의 미래를 염려하는 자들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