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에 걸쳐서 소개합니다.
1. 아나뱁티스트 전통에서의 성서해석
2. 스스로 해석하는 성서
3. 그리스도 중심론과 두 개의 언약
4.성령과 말씀
5. 공동의 성서해석과 순종의 해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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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해석학 발달은 교회의 변화와 긴밀한 관계가 있었을뿐아니라 오늘날의 해석학적 논쟁 역시 전세계 교회의 변화와도 관계가 있다. 20세기 전세계 교회의 변화는 유럽과 북미에서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로 기독교의 중추적인 중심의 변화를 포함하고 있다. 오순절과 은사주의 운동의 놀라운 성장 과 크리스텐덤(Christendom:기독교제국:수 세기동안 이어진 콘스탄틴주의와의 통합이라고 불리는 교회와 국가 사이의 충성관계)의 붕괴 혹은 변이라고 불리는 것 등이다.
한때 객관적이라고 생각되었던 서구의 해석학적 전제조건과 방법은 현재, 유럽 이외의 학자들로부터 자기 민족 편향적이며 관념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제3세계 기독교는 성서해석에서 학자와 학문적인 방법론에 대한 서구의 독점에 도전하고 있으다. 또한, 급성장하는 오순절 계열과 은사주의 교회는 아직 충분히 검토되지 않은 해석학적인 의미와 새로운 강조점을 성령론에 두려고 한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이미 크리스텐덤의 시대가 끝나고 있으며,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기독교의 미래는 교회와 국가가 분리된 자유교회(Free church)의 양상을 띠게 될 것이다. 이런 변화는 과거 1,500여 년 동안 대부분의 해석자가 콘스탄틴의 구도 안에서 성서를 해석해 왔기 때문에 크리스텐덤의 소멸은 이 시대에 영향을 끼쳤던 해석학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가 요구된다.
새로운 접근과 방법론의 확산은 교회에 대한 이해 변화와 그전 시대의 접근법에 대한 불만이 매우 높다. 지난 2세기 동안 유럽학자들에 의해 발전하였던 역사비평 방법은 개혁주의자들의 유산 위에 세워져 성서해석학에 있어 오랜 시간동안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많은 성서해석학자들은 이제 역사비평 방법은 방법론으로서 운명을 다해가고 있으며 새로운 접근방법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서해석비평은 접근방식의 증가와 그들의 부족한 상호작용에 대한 다음과 같은 관심을 포함한다.
- 철학과 언어학적 전제의 검증되지 않은 내용의 영향, 역사 비평적 방법에 대한 적절한 자기비판의 실패, 본문을 정확하지 않은 의심과 회의적 관점으로 다루는 경향
- 기존의 해석법이 이런 해석들을 판단하는 표준이 되는 방법에 대한 뚜렷한 호소력 없이 쉽게 다음 세대에 의해 전복된다는 사실
- 현재보다는 과거에 대한 지나친 관심
- 기존의 이해에 어떤 다른 접근도 더할 수 없는 무능력 대신 성서를 모호하게 만들거나, 그 의미를 신비롭거나, 복잡한 언어로 표현하는 것
- 종종 사변적이고 평가가 쉽지 않은 본문 이면의 이야기를 향한 집요한 연구
- 그리고 해석은 실제적인 적용을 하지 않은 채 가치중립적인 위치에서 행해진다는 전제
아든 오트리(Arden Autry)는 “오랜 기간 지배적이었던 역사비평 방법이 해석학의 전체 과제와 비교하면 부적절한 것일 뿐이었다는 중론을 주목하고, 해석학에서 지금 일어나는 동요는 일반적으로 이런 인식에 기인한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해석학에 대한 불만족과 새로운 접근이 생긴 이유는 의심의 여지없이 현대의 합리주의에서 포스트 모더니즘의 다원주의와 상대주의로의 문화 이동에 기인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학자들의 해석과 교회의 해석 사이에 있는 차이를 인식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대부분 그리스도인은 여러 세대 학자들의 전문적 지식에도 불구하고 성서를 비평적으로 연구하지 않고 대부분 개인의 영성생활을 위한 것으로 성서를 꾸준히 해석했다. 어떤 새로운 접근은 예전의 전통적인 방법보다 교인에게 다가가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접근들의 확산과 복잡성은 성서학자들과 교회의 간격을 더 벌어지게 하고 있다. 실제로, 바벨탑의 이미지는 다른 사람과 소통되지 않는 여러 목소리를 묘사하고 있거나, 혹은 성서 해석의 전체 과제에 일관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여러 다른 소리와 흡사하다.
그렇다면, 왜 아나뱁티스트 성서해석학인가? 왜 종교개혁의 다양한 전통 중에 아나뱁티스트 전통의 교회(메노나이트, 아미시, 후터라이트, 브레드런, 퀘이커)가 지켜온 성서해석관점에 대해 말해야 하는가? 그것은 종교개혁의 다양한 전통을 가진 다양한 교파의 현재를 바라보는 교회의 모습과 성서를 보는 관점과 무관하지 않다.
아나뱁티스트 전통 안에서의 성서해석
이미 다른 성서해석의 전통이 자리잡은 가운데, 아나뱁티스트들이 성서를 어떻게 보았는지 생각해야 하는 데에는 8가지 이유가 있다.
1) 아나뱁티스적 해석은 역사비평 방법에서 유래한 종교개혁주의자들의 해석학과 같은 시대에 발전하였다. 아나뱁티스트들은 개혁주의자들의 방법론에 영향을 받았지만, 한계를 발견하고 다른 접근법을 주장했다. 16세기의 대안에 대한 재검토였던 이 접근법은 개혁주의 뿌리의 한계를 드러내며, 현대 비평가들이 주장한 것과 비슷한 관점을 제공하므로 21세기에도 전혀 낮설지 않다.
2) 종교개혁의 중요한 해석학적 주제가 아나뱁티스트들과 개혁자들 사이의 토론, 아나뱁티스트들과 신령주의자들의 토론, 그리고 다른 아나뱁티스트 지도자들 간의 토론에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토론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 구약과 신약의 관계
- 성서해석에서의 성령의 역할
- 해석학에서의 교회의 위치
- 순종의 인식론적인 중요성
- 그리고 어떤 성서가 명료한가에 대한 범위
종교개혁자들의 승리와 아나뱁티스트(아나뱁티스트 해석학)에 대한 억 압은 종교개혁자들의 해석학적인 시야가 다음 세대들에게도 수용되었음을 확실시한다. 그러나 이런 주제들은 아직 논쟁의 여지를 둔 채 중요하게 남아 있다. 만약 종교개혁주의자들에 의해 발전한 해석학의 전통이 위의 질문들에 적합한 답을 주는 것에 실패했다면, 오랫동안 박해받은 아나뱁티스트 해석학이 주창한 대안들을 재검토하는 일은 가치가 있으며, 아나뱁티스트 해석학은 전통적인 종교개혁 이후의 성서접근 방법에 흥미있는 대안을 제공하고 있다.
3) 현대적 운동이 제안한 많은 도전 안에는, 아나뱁티스트들이 같은 주제들을 어떻게 다루어왔는지에 대한 반향들이 있다. 그 예 중에는 성서 해석과 적용 사이의 전통적인 관계에 도전하는 해방신학이 포함되고, 성서 해석에서 성령의 역할을 무시하는 전통에 대한 은사주의 운동의 도전도 포함된다. 비록 아나뱁티스트 해석학운동도 유럽에서 나타난 현상 중의 하나이지만, 아나뱁티스트 해석학운동은 유럽사회에 널리 퍼진 관념적 헌신을 거부했고, 가난하고, 힘없고, 억눌린 자들을 위한 해석을 개발했다. 이런 해석은 현대의 해방주의자들과 유사하며, 이런 해방신학과 유럽의 반응에 대한 평가에 유리한 점을 제공해 준다.
6세기 성서해석에서, 아나뱁티즘은 말씀과 성령의 관계를 널리 탐구하고 토론한 은사주의 운동으로서, 은사주의 교회를 위한 자료들을 제공하고, 은사주의 교회와 말씀주의 교회 사이의 긴장 관계에 통찰력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4) 아나뱁티스트들의 성서연구 접근법은 신학교가 아니라 개교회(지역교회)에서 계발한 것이다. 이들이 제공하는 것들은 학술적인 정보가 제공하는 것보다 부족하지 않다. 이런 접근법에 대한 자세한 연구와 이런 가치에 대한 평가는 학자들과 교회 사이의 차이를 줄이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5) 아나뱁티스트들은 종교개혁가들이나 대부분의 주류 학계의 해석학자들과 달리, 대부분 교육을 잘 받지 못한 박해받은 사람들이었다. 이런 경험은 그들의 성서를 보는 통찰력이 그들의 편안했던 동시대인들보다는 초대교회의 경험과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와 더 유사했음을 말하고 있다. 21세기인 지금 그리스도인 대부분이 가난하며, 박해가 지구촌 교회 전역에서 놀라운 비율로 경험되고 있는데 아나뱁티스트들은 이런 현실적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6) 수세기 동안의 무시와 추방과 반대자들의 말에 기초한 평가 그리고 잘못된 해석의 이면에서 아나뱁티즘은 재건과 회복의 잠재적인 자원으로서 적절한 역사적 운동으로서 재발견되고 있다. 신학적, 교회학적, 윤리적 주제에 대한 아나뱁티스트적 관점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그들이 가진 관점으로 성서를 해석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있다.
7) 교회역사와 같이 했고 역사적 운동의 시발로서뿐 아니라 교회역사를 통해 소외당한 계층을 특징화 해 온 성서를 다루는 성서해석에 대한 아나뱁티스트의 접근법은 중요하다. 이런 그룹을 공부하는 것은 상당한 정도의 다양성을 드러내는 것이며,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 의해 무시되었지만 중요한 가치를 지닌 대안들에 근본적인 동의를 나타내는 것이다.
8) 교회와 국가의 연합이라는 콘스탄티니즘의 영향을 받은 가톨릭과 개신교에 의해 꾸준히 수용된 크리스텐덤 및 그 시스템에 대한 아나뱁티스트들의 거부는 성서해석에 영향을 미쳤다. 다른 종교개혁자들과 달리, 아나뱁티스트들은 콘스탄티니즘과 그 가치를 거부했고, 그러한 새로운 전제, 방법 그리고 결론 안에서 자신들의 견해를 반영하는 해석학을 채택했다. 그것은 깊은 역사적 뿌리를 제공하고 또 거기에 접근했으며, 오늘날과 같은 후기콘스탄틴 교회와 사회에 더욱 적합한 것이 되었다.
16세기 초의 사회정치적, 교회적 그리고 해석학적 혼란과 문제를 일으킨 아나뱁티스트의 성서해석은 21세기에 비슷한 혼란과 이슈에 직면한 사람들에게 통찰력을 제공해 준다. 비록 윌라드 스와틀리(Willard Swartley)는 아나뱁티스운동 자체에서 서로 다른 점이 많다는 점과 16세기 사회적 정치적 환경의 특정한 주제에 관련된 성서연구를 했다는 점을 지적하였지만, 그는 결국 “여왕 에스더의 말을 바꾸어 말하자면, 아나뱁티스트의 성서 연구는 21세기인 지금까지 이어져 왔으며 이는 우리에게 미래의 장소를 제공할 것이다”라고 결론을 지었다.
이 연재에서는 아나뱁티스트 운동이 형성되던 시기(대략 1525-1560)에 성서가 어떻게 이용되고 해석되었는지를 살필 것이다. 우리는 이 운동에서 성서해석의 논쟁과 아나뱁티스트와 다른 동시대 사람들 사이의 토론에 대해서도 귀를 기울일 것이다. 또한, 아나뱁티스트들이 해석학을 구성하는 원리들을 소개할 것이다. 그리고 아나뱁티스트 전통의 성서해석이 21세기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필요에 공헌하는 바에 대해서도 소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