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인 클레어본이 '이머징 처치' 운동에 대해서 평가한 글입니다.

by 신광은 posted Jul 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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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인 클레어본이 '이머징 처치' 운동에 대해서 평가한 글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오늘날 세계 여기 저기서 교회 갱신 운동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 중 매체를 잘 장악한 이머징 처치 운동이 선도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 그들은 다소 자아도취적 경향이 있다고 일갈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름을 짓느냐,


또 어떤 조직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성령께서 이끌고 계시는 개혁과 갱신의 흐름을 뒤쫓아 가면서,


기뻐하고, 축하하고, 참여하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예리한 통찰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KAF에 대해서도 유익한 지침을 마련해 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은총이...


 


출처: Follow Me to Freedom


 


 


이러한 교회론(ecclesiology), 혹은 교회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이러한 사고 방식은 “신 수도사들”(new monastics)이라고 자처하는 우리를 현대의 다른 운동들, 예컨대 “이머징(emerging)” 혹은 “이머전트(emergent)TM”라고 부르는 교회 내 갱신주의자들과 구별하게 만든다. “이머징 처치(emerging church)”라는 말이 익숙치 않은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는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현대의 갱신 운동의 다소 혼란스러운 흐름이 되고 있다. 10여 년 전에 주로 백인 복음주의자들로 이루어진 일단의 젊은이들이, 다소 비슷해 보이는 주제의 대화를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미국 전역으로 확대되었다. 이 대화는 복음주의의 새로운 방향성, 선교에 대한 재고, (역사 속에서나 현대에서) 교회됨의 참된 의미에 대한 인식 변화 등에 관한 것들이었다. “이머징 처치”라는 말은 굉장히 많은 요소들과 연관이 있는 말인데, 주로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교회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위대한 사상들을 가지고 있으며 공동체와 조직들을 힘차게 이끌어 가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머징 처치만 교회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일한 갱신 운동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힙합 청년 교회(hip hop church youth)와 해외 선교적 공동체(missional communities overseas), 그리고 자생적 운동들(indigenous movements) 등도 일어나고 있다. 물론 이 운동들은 똑같은 시기에, 똑같이 책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하지는 않는다. 결국 책과 브랜드(brands)가 “이머징 처치” 혹은 “이머전트”라는 구분을 만들어 냈고, 그 덕에 약간 혼잡스럽게 되고 말았다. 내 생각에 “그 운동”은 다소 자아도취적(narcissistic)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 운동의 신학은 다소 엉성하고, 그들은 (문신을 좀 더 많이 한) 근본주의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으며, (재치가 좀 더 많은) 자유주의의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반면에 “이머징 처치”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이들이 그것을 적 그리스도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이머징”이나 “이머전트”라고 생각하는, 내가 가까운 친구들로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교회 내에서 신선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의 신앙과 실천을 이머전트로 여기지만 문제가 많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또한 일부러 이머전트로 정의하지 않는 친구들도 꽤 있고, 이머전트라는 말을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친구들도 많이 있다. 나는 이머전트가 아닌 이들에게서도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신선한 목소리를 듣는다. 마찬가지로 이들 중에도 그들의 신앙과 실천에 있어서 커다란 문제가 있는 사람들도 없지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머징 처치”라는 말이, 적어도 이머전트TM라는 브랜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구분하는 어떤 변별적인 표식이나 행동, 성질이나 DNA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어떤 사람이 “이머징 처치”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성경과 초와 영화 <매트릭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어떤 사람은 앞의 두 개는 선택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이머징 처치”는 40세 이하의 신선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집어 넣을 수 있는 상자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별로 이머징 처치를 변호하려고 애쓰고 싶지 않다. 여기에다 주석을 다는 정도면 족할 듯 싶다. 아마도 그것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현대적 갱신을 적당한 말로 이름 짓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 생각에 이름을 어떻게 짓느냐보다 교회사 속에서 꾸준히 나타났던 수도원적 갱신이나 기타의 종교개혁의 흐름 속에 우리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그냥 하나의 갱신운동이 있는 것이다. ... 유대인들이 G-D의 이름을 쓰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 갱신을 기뻐하고,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 그리고 이것이 교회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하고 싶다. 꼭 무슨 이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예전에 프린스(prince)라고 알려진 가수처럼 말이다. 우리가 그 운동을 명명하는 순간 그 운동을 죽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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