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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8~1526

취리히 시의회는“모든 아기는 침례(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법령을 다시 발표했습니다.
이에 대해 젊은 콘라드 그레벨은“나는 시의회의 법령에 동의하지 않습니다”하고 당당하게 맞섰습니다.
“ 어린 딸에게 나는 침례(세례)를 받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른이 되어 스스로 교회에헌신하겠다고 하기까지 침례(세례)를 받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가 얼마나 진지하였는지, 콘라드 그레벨도 자신과 나이가 같은 사람에게 침례(세례)를 다시 주었습니다.
그리고 콘라드 그레벨에게 침례(세례)를 받은 그 사람이 다시 그레벨에게 침례(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아나뱁티스트로 알려진 새로운 신자들의 그룹이 역사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습니다.
콘라드는 약 500여 년 전,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자였던 그의 아버지는 시의 리더였습니다. 콘라드는 16세가 될 때까지 라틴어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는 세 개의바젤, 비엔나, 파리 대학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콘라드는 파리에서 공부하는 동안 매우 방탕한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그에게 더는 생활비를 보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스스로에게도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았던 콘라드는 집으로 돌아와 자신과 부모님이 행복하게 함께 살 수 있기를 희망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콘라드는 아버지가 반대하는 여인을 만나 결혼하였고, 가난한 집에서 자란 아내 바바라는 시의 공무원의 집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이제 콘라드는 부모님과 완전히 결별해야 했습니다. 콘라드는 당시 영향력 있는 설교가요 교회의 리더였던 울리히 쯔빙글리라는사람에게 매료되기 시작했습니다. 콘라드와 몇몇 젊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성경에 대하여 쯔빙글리와 긴긴 토론을 벌였습니다.
왜냐하면, 쯔빙글리는 자신의 교회 내에 있는 여러가지 신념과 교회의 예식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콘라드와 그의 동료는 성경공부와 기도를 위해 비밀스런 모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상은 오래지 않아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쯔빙글리는 이들의 몇몇 생각에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곧 콘라드 그레벨과 울리히 쯔빙글리 사이에 침례
(세례)와 정치에 관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참여해서 들을 수 있는 공청회가 열렸습니다.
결국, 시의회는 이러한 싸움을 중단시켜야겠다고 결정하였습니다. 이들이 침례(세례)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든지 상관없이 시의회는 모든 유아가 침례(세례)를 받아야만 한다고 공포하였습니다. 그리고 시의회의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은 시를 떠나도록 조치하였습니다.
1525년 1월 21일, 콘라드와 그의 동료는 무슨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함께 모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다시 만나는 일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시의회의 결정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날 밤 콘라드 그레벨이 조지 블라우락에게 침례(세례)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금 조지블라우락이 그에게 침례(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 대담한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고, 수많은 사람이 이 새로운 운동에 합세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게 되자 콘라드가 하루에 500명에게 침례(세례)를 준 적도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취리히 시의 리더들과 사제들은 점점 더 화가 났습니다. 결국, 그들은 누구든지 교회로부터 도망하는 사람들을 그 즉시에서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가는 곳마다 설교하던 콘라드는 비밀스럽게 취리히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취리히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체포되어 다른 아나뱁티스트들과 함께 교도소에 투옥되었습니다. 그러나 콘라드와 두 명이 교도소에서 도망 나와 계속하여 복음을 전했습니다. 비록 콘라드는 28세의 젊은 나이였지만, 병에 걸려 몹시 쇠약해졌습니다. 그는 아주 조용한 마을로 피신하였지만, 거기에서 목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몇 달 뒤, 시 정부는 아나뱁티스트들을 사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콘라드가 세우고자 했던 교회는 비록 수많은 사람이 체포되고 사형에 처했음에도 성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아나뱁티스트 사상은 다른 나라로도 빠르게 퍼져 나갔습니다. 더욱더 많은 크리스천이 스스로 믿음을 선택하는 교회에 가입하기 위해 관심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용기있는 믿음의 사람들"(대장간, 201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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